1. 해바라기 - 강정 밀회의 숲

 

해바라기
 - 미시령에서, 강정作


바다에서부터 시작된 고개를 넘자마자
햇빛이 알알이 굳어
잘 익은 옥수수알처럼 발밑을 구른다
나는 자꾸 이곳보다 더 넓거나 깊은 곳을 상상한다
우뚝 솟은 산은 아무래도 바다의 거짓말 같다
나는 오래전 물 밖으로 튀어나온 산 구릉의 생각들을 되뇐다
공기가 뜨겁다
바람이 열기구처럼 튀어나와 부푼다
해가 통통하게 굳어 그 아래 긴 그늘로 속삭인다
보이는 건 모두 해의 뒷면
해의 기나긴 잊힌 말들
사람은 제 얼굴보다 큰 모자의 차양을 꽃잎으로 흔들며
입을 닫는다
노란 말풍선이 빛의 초점을 모아 허방에 실소를 터뜨린다


한 편의 시가 구겨져 다른 빛이 되는 여름낮


시집 '귀신' 문학동네


 

시는 어쨌거단 홀연한 것이다. 시인은 시를 쓰면서 홀연히 자기 자신의 한계 바깥으로 슬금슬금 이동한다. 그러기 위해 무언가 (아주 쓸모가 없는 어떤 것을) 빤히 노려본다. 오래 응시한다. 너무 오래 쳐다봐서 처음 발견한 것과 다른 것이 될 때까지 그렇게 한다. 시에게 행과 연이 있는 이유는 이 오랜 응시의 시간을 문장이 아닌 것으로 표시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그래서 시를 읽으며 행과 행 사이에 여백을 만끽한다고 표현한다) 단숨에 쓰여진 시일지라도, 사전에 이 오랜 응시와 사색이 있었고, 그 끝에서 이루어진 단숨이다. 시인은 그렇게 잠시 자신의 처지 바깥에 놓임으로써 갱생을 도모하는 지도 모른다. 그 갱생의 맛이 곧 시의 쓸모이다

시인 강정은 한국 사람이라서 이런 시를 쓴다. 여름이라서, 미시령이라서, 무엇보다 시인 강정이라서 이렇게 쓴다. 헛것을 말해왔고 헛것과 싸우고 헛것과 교배하다 기어이 스스로 헛것이 되어가고 있는, 귀신과 가장 닯아버린 시인이라서, 그럼으로써 또다르게 시인의 시들은 홀연하다. 이 홀연함들을 명명하면서 가두는 것이 될까봐 명명도 하기 싫다. 더 큰 홀연함과 더 놀라운 홀연함과 홀연함보다 더 이상한 출몰이 이 시인 앞에 있을 테니까.
- 김소연


홀연한 순간들이 내게도 몇번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지금의 변화가 또 어떤 계기가 될 것인가. 나는 문청도 아니고 습작생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제대로 글을 써본적이 평생 한번도 없었다. 글을 길게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짧게 빨리 쓰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잘못된 습관들을 바로 잡고자 한다. 쉴새없이 써볼 생각이다. '나는 자꾸 이곳보다 더 넓거나 깊은 곳을 상상한다'

그런데 강정이 언제 이렇게 좋은 시를 썼던가
(1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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