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521 목요일 : 'this house is ours' 집에 관한 단상 기억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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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중계를 보지 말아야 겠다. 한화 이글스의 평균 경기시간은 4시간. 물론 그 시간동안 야구만 보는 건 아니고, 일을 하면서 그냥 중계를 틀어놓는 것이긴 하지만, 한화가 경기에 지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내가 4시간 동안 뭐한거지? 싶고. 특히 어제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권혁이 나와서 끝내기 안타맞고 질때는 정말 멘붕이다. 사실 4시간이면 영화를 두편 볼 수 있는 시간인데. 오늘 부터는 문자중계로 이따금씩 결과만 확인하다가 이기고 있으면 9회부터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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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사회생활이 힘들어도, 돈벌이에 지쳐도, 혹은 밖에 멀리 나가 있어도, 집이라는 아늑한 공간이 어딘가에 있을때 그것은 마음의 버팀목이 된다. 집은 삶의 근간이 됨은 물론이고 집 그 자체는 곧 휴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전세를 싫어한다. 내가 살고 있는집이 내 집이 아니라는 느낌을 싫어한다. 안락한 나의 공간이 아니라 주인의 눈치를 봐야 하고 전세금을 올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 하면서 살아야 하는 집이라니. 차라리 전세보다는 월세가 좋다. 매달 내야 하는 돈은 아깝지만 월세는 언제든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전세에 살아본 적이 없다(친구들과 모여 살때를 제외하고). 항상 월세에 살았고 덕분에 자주 집을 옮겼다. 

작년에 아파트를 마련했다. 형편에 비하면 좀 크다 싶었지만 가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앞으로 몇년을 열심히 대출을 갚으며 살아야 겠지만 삶의 우선순위에서 내집 마련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김영하의 '집'에 관한 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나서 몇자 끄적여 봤다. 


그 후로도 가끔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지냈다. 지금도 분당의 부모님은 위층의 세입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때로는 평화롭게 때로는 씨끄럽게 그들과 공존하고 있다. 지나고 보니 어쩌면 '우리 집'이라는 것은 하나의 신화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집이라는 정거장의 승객일 뿐이라는 생각. 중풍 걸린 그 할머니도, 참기름 도둑의 누명을 써야 했던 그 손녀도, 고모네 식구도, 한때는 모두 우리 집의 주인들이었다. 우리는 단지 그들 보다 조금 오래 살았을 뿐이다.
이 모든 생각들은 '디 아더스'의 마지막 대사가 촉발한 것이다. 'this house is ours'였던가. 창백한 얼굴의 그레이스(니콜 키드먼)가 두 아이를 끌어안고 절망적으로, 그러면서도 집요하게 되뇌던 '이 집은 우리 집이야!' 그 대사로부터 나는 열세 평짜리 아파트를 지키려다 엉뚱한 사람을 의심하고 친척들을 원수로 만들어버린 누군가가 떠올랐다. 능력 없고 사람 좋은 남편 덕분에 '나쁜 여자'가 되어야 했던 그 사람은 바로 내 어머니였다. 그 어머니와 그레이스가 가장 싫어했던 사람들은 바로, '이제는 함께 살아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침입자들이었다.
그런 내 어머니와 그레이스가 애써 잊고 있는 것. 그것은 우리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침입자였다는, 어쩌면 지금도 그렇다는, 슬픈 진실이다
- 김영하, '김영하와 이우일의 영화 이야기' p.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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