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복수는 나의 것 - 박찬욱, 조르주 바타이유, 정성일, 새벗 밀회의 숲

내게 지금 현재, 아니 영화 120년의 역사 전체적으로 단 한명의 '한국 영화 감독'을 꼽으라면 그건 어쩔 수 없이 '박찬욱'이다. (3명을 꼽으라면 박찬욱과 봉준호와 김기덕이다. 혹은 좀 다른 의미에서 임권택을 꼽을 수도 있겠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중 최고는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이다. 두 작품 모두 걸작이라 도저히 하나를 꼽을 수가 없다. 그런데 희안한 것이 '올드보이'는 수없이 보고 또 봤고 지금도 또 보고 싶은데, '복수는 나의 것'은 딱 한번 봤다. 너무 이미지가 강렬한 영화라 10여년 전에 딱 한번 보고도 거의 모든 장면을 그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한번 더 보고 싶은 생각은 딱히 들지 않는다. 왜 그런걸까?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다.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한 글을 찾아보다 정리한 메모

그러나 악의 편견은 공허해져 버렸다. 스스로 악이고자 했던 것은 일종의 선일 뿐이며, 악의 매력은 무화시키는 힘에 집착할 뿐이므로 무화가 완성된 이후에는 그것은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악의는 '가능한 최대한으로 존재를 무로 변모'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의 행위가 실현이므로 무가 존재로 변하고, 동시에 악인의 절대성은 예속으로 들어선다. 다른말로 하면, 악은 선이 그렇듯이 하나의 의무가 되었다.
- 조르주 바타이유 '문학과 악'

올해 가장 웃기는 대사를 꼽으라면 나는 이의없이, 판결문, 차영미 피살사건을 심리한 결과, 박동진이, 한국 무정부주의자 동맹의 일원을 고문하고, 살해한 죄가 인정되므로, 재판부 전원합의에 의해, 무산계급과 혁명의 이름으로 사형을 언도한다, 라고 쓰여진 종이를 박동진의 가슴에 칼로 꽂은 순간을 선택할 참이다. 이건 비꼬는 말이 아니다 (어찌되었던) 장사는 끝났다. 그렇다면 이제는 진담을 말해야 한다. 목자와 양떼들 사이에서 거짓말쟁이 소년은 누구였는가? 우리는 늑대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늑대는 양을 잡아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목자는 잃어버린 단 한마리의 양을 찾아 오늘도 헤멜 것이다. 하지만 누가 영화에서 본 것에 보지 않은 것을 덧붙이는가? 보았다고 말한 것이 정말 거기서 보이는가? 이제 소설을 쓰는 일은 중단되어야 한다. '복수는 나의 것'을 보고 너무나 잔인해서 기절할 뻔 했다고? 아마 그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웃을 사람은 박찬욱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웃자고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아니라 박찬욱이 한 말이다. "어떤 사람들이 아무리 호러라 주장해도 나는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사람들이 안 웃어도 모든 장면 또한 다 웃음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붉은 페인트가 많이 사용되고, 14명이 누울 자리고 부족하게 죽은 척하고 누워 있다고 해서 영화가 잔인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영화광 박찬욱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말 사람들이 웃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무언가 서로 빗나간 대상이 있다. 왜 웃음의 대상이 불가능한 욕망이 된 것일까? 반대로 대중들은 어디서 영화가 바라지 않는 오해의 환상을 연출해낸 것일까? 이 숨바꼭질의 진짜 술래는 누구일까?
- 정성일

[복수는 나의 것]은 대부분의 장면을 슈퍼35mm 카메라로 담아냈습니다. 김병일 촬영감독의 말처럼 이런 와이드스코프는 장대한 스케일의 스펙터클한 장면에 쓰인다고 생각하기 쉽고, 또 실제로 그렇게 많이 쓰입니다. 그러나 [복수는 나의것]에서 이 와이드스코프는 또 다른 기능을 하지요. 널찍한 화면은 인물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습 전체를 빠짐없이 담아냅니다. 이것은 영화 전체에 걸쳐 고른 현실감을 부여해주고 있습니다.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이 행동하는 곳은 감독에 의해 철저히 재단된 영화 속 현실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의 세계로 받아들여지지요. 게다가 박찬욱 감독의 요청에 따라 다시 어두운 녹색을 띄게 된 화면은 이 실제의 세계를 더할 나위 없이 건조한 모습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세븐(SE7EN, 1995)]같은 영화에서 느껴지는 스멀스멀한 암흑의 느와르 스타일과는 달라요. 이건 말 그대로 hard-boiled죠. 물론 그렇다고 카메라 가는대로 그냥그냥 담아낸 건 아닙니다. [복수는 나의것]의 연출은 정말 멋져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처럼 화려하고 실험적이며 감각적인 것은 아닙니다만 기존에 있어왔던 여러 기법들을 충실히, 적재적소에서 재현하고 있습니다. 그 깔끔함 때문에라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어요.
- 새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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