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제물포에 가서 긴 줄의 끄트머리에 섰다. 기골이 장대한 사내를 그 줄에서 만났다. 그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람은 이름이 있어야 한다. 장쇠 같은 아명은 닞어라. 성은 김가로 하고 이름은 이정으로 해라. 두 이 자에 바를 정자다. 그게 쓰기 쉽다. 줄이 줄어드는 동안에 그가 한자로 이름을 써 보였다. 모두 7획이었다. 사내의 이름은 조장윤이라 했다. 대한제국 신식 군대의 공병 하사였던 그는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군복을 벗었다. 그와 같은 처지가 적지 않았다. 함께 각반을 차고 신식 장총으로 러시아 고문단에게 훈련을 받던 이들 중 2백여명이 제물포로 몰려들었다. 그들만으로도 족히 하나의 대대를 창설할 수 있을 정도였다. 부쳐먹을 땅도 없고 뒤를 봐줄 친척도 없는 자들이었다. 어느 나라보다도 절실하게 군대가 필요했던 허약한 제국, 그러나 제국의 곳간에는 그들을 먹여살릴 쌀이 없었다. 무엇보다 일본측이 군비 삭감과 병력 감축을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변방의 군인들은 병영을 떠나 흘러다녔다. 그들 중 상당수가 훗날 일본군의 배후를 교란하게 되겠으나, 1905년 2월의 제대병들은 황성신문에 난 대륙식민회사의 광고를 보고 앞다투어 제물포로 달려왔다. 그들은 먼저 일터와 돈과 따득한 밥이 기다리고 있다는 멕시코로 떠나기를 갈망했다. 조장윤도 그중의 하나였다. 황해도의 포수였던 아비는 중국으로 떠난 뒤 종적이 묘연했다. 상하이에서 중국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사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상하이로 가지 않았다. 대신 사시사철 태양이 뜨겁다는 멕시코를 선택했다. 게다가 군대 봉급의 수십배를 준다지 않는가. 주저할 것이 없었다. 고생이야 어디 군대만 하겠는가.
소년은 바다로 시선을 던진다. 부리가 검은 갈매기 세 마리가 소년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다. 누군가는 멕시코에 금이 있다고 했다. 누런 금이 쏟아져 나와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아니다, 거긴 미국이다. 라고 또 어떤이가 주장하였지만 그것도 확실치는 않았다.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되뇌였다. 김이정. 나는 김이정이다. 먼 나라로 간다. 그리고 어른 김이정이 되어 돌아온다. 이름과 돈을 갖고 돌아와 땅을 사고 거기에 벼를 심을 것이다. 땅을 가진 자는 존경을 받는다. 그것이 소년이 길에서 배운 단순한 진실이었다. 멕시코의 땅이어서는 안된다. 조선의 땅, 그것도 논이어야 한다. 소년의 마음 속에 또 다른 생각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또다른 미지의 나라를 향한 것이었다.
갈매기들이 해수면 위에서 춤을 추듯 너울거린다. 재빠른 몇 놈은 제법 큼직한 물고기를 입에 물고 날아간다. 갈매기의 날개가 붉은 빛으로 물든다. 어느새 낙조였다. 소년은 배 밑창의 선실로 내려가 다시 구석에 처박힌다. 어린아이 울음소리 사이로 굵고 낮은 남자들의 음성이 들려온다. 앞날을 알지 못하는 사내들의 목소리엔 찰기가 없다. 말들은 뱃머리에 부딪쳐오는 물거품처럼 흩어져버리고 어떤 의논을 형성하지 못한다. 소년은 눈을 감는다. 그의 소망은 아침밥이 나올 때까지 깨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소년은 바다로 시선을 던진다. 부리가 검은 갈매기 세 마리가 소년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다. 누군가는 멕시코에 금이 있다고 했다. 누런 금이 쏟아져 나와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아니다, 거긴 미국이다. 라고 또 어떤이가 주장하였지만 그것도 확실치는 않았다.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되뇌였다. 김이정. 나는 김이정이다. 먼 나라로 간다. 그리고 어른 김이정이 되어 돌아온다. 이름과 돈을 갖고 돌아와 땅을 사고 거기에 벼를 심을 것이다. 땅을 가진 자는 존경을 받는다. 그것이 소년이 길에서 배운 단순한 진실이었다. 멕시코의 땅이어서는 안된다. 조선의 땅, 그것도 논이어야 한다. 소년의 마음 속에 또 다른 생각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또다른 미지의 나라를 향한 것이었다.
갈매기들이 해수면 위에서 춤을 추듯 너울거린다. 재빠른 몇 놈은 제법 큼직한 물고기를 입에 물고 날아간다. 갈매기의 날개가 붉은 빛으로 물든다. 어느새 낙조였다. 소년은 배 밑창의 선실로 내려가 다시 구석에 처박힌다. 어린아이 울음소리 사이로 굵고 낮은 남자들의 음성이 들려온다. 앞날을 알지 못하는 사내들의 목소리엔 찰기가 없다. 말들은 뱃머리에 부딪쳐오는 물거품처럼 흩어져버리고 어떤 의논을 형성하지 못한다. 소년은 눈을 감는다. 그의 소망은 아침밥이 나올 때까지 깨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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