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70년대産 - 진은영, 노량진 단상 - 한량 밀회의 숲

대학시절 교수가 말했다. '너희들이 문학을 공부한다고. 작가가 되겠다고 그러면서, 정말 목숨걸고 하고 있느냐. 하루에 수백개, 수천개의 슛연습을 하는 농구선수 만큼 문장 연습을 하느냐. 축구선수 야구선수 만큼, 혹은 과학도들 만큼 밤새 연구하고 고민하고 몰두하느냐.' 나는 부끄러웠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 그때 왜 더 치열하고 처절하게 부딪히지 못했을까. 지금처럼 밥벌이의 의무조차 없던, 자유로운 시절에

70년대산
- 진은영

우리는 목숨을 걸고 쓴다지만
우리에게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
그것이 비극이다
세상을 허리 위 분홍 훌라후프처럼 돌리면서
밥 먹고
술 마시고
내내 기다리다
결국
서로 쏘았다

김승옥은 1960년대의 현대인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벽으로 나뉜 여관으로 설명했지만. 2000년대 고시생들의 고독과 무관심, 우울은 차마 벽이라 부르기 민망한 벽이나 그보다 못한 칸 사이에서 생성된다. 자습실, 독서실에서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지 않으며 공식적인 의사소통은 짤막한 포스트잇, 비공식적인 의사소통은 의자끄는 소리, 줄치는 소리, 책 넘기는 소리 등으로 나타난다. 상대에 대한 관심표현이라곤 오로지 곁눈질로 '저 사람은 무엇을 공부하나, 어떤 책을 읽고 있나.' 슬쩍 훔쳐보는 것으로 그치는 우리는 어느정도 관음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둡고 따스한 고치같은 독서실에서 나비가 될 날만 꿈꾸는 우리는 모두 변태 前 이었다.

그러나 개론서 사이에서 길을 잃고 10포인트 활자들의 모래바람에 시름시름 앓는 청춘들을 위한 젖과 꿀이 흐르는 오아시스 역시 존재하고 있기에. 친구는 푼돈 가지고 반나절을 오락실에서 보낸다 하였고, 밤이 되면 취객들은 '여느 서울거리 남부럽지 않게' 성실히 비틀거리는 노량진에. 정말 허름하고 후져보이는 모텔도 있었다. 나는 버스 창에 머리를 기대어 그 남루한 핑크색 외벽을 바라보며 '저런 데 가자고 말하는 놈은 귓방망이를 후려쳐야지' 라고 생각했다. 주먹을 부르는 보금자리였다

너절한 일상을 한탄하다가(이건 주로 임고의 세계와 거리가 먼 '일반인'들과의 대화에서 발생한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구구절절 이 시험의 어려움과, 그로 인해 '늘근 날간 브룛 사람'이 되어버린 내 신세를 늘어놓다가 새삼 깨달았다. 어떤 종류의 구구절절은 구질구질과 맞닿아있구나 하고
- 한량


한량, 독서를 꾸준히 하면 이만큼 좋은 글을 쓸 수 있구나 하는 확신을 그녀가 주었다. 다시 돌아온 이글루에서 그녀의 블로그를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담아오고 싶은 글들 천지였다. 무명 시절 허지웅의 블로그 이후,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운 질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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