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718 土 : 영화, 손님 2015 책과 영화의 숲


김광태 감독, 류승룡, 구승현, 이성민, 천우희, 이준 주연, 정경호 출연, 춘천 명동 CGV

"손님이 온다. 손님이..."

때는 1950년 중후반. 아직 전쟁이 끝났는지 모르는 깊은 숲속의 어느 마을에 손님이 찾아온다. 절름발이 악사 우룡(류승룡)과 영남(구승현) 부자. 이들은 영남의 폐병을 고치러 서울로 가던 길이었다. 하룻밤만 묵고 가게 해달라는 이들에게 어쩐지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냉담하다. 촌장(이성민)은 우룡 앞에서는 친절하지만 어쩐지 음산한 기운이 드는 사람이다. 그는 우룡에게 하룻밤을 재워주는 대신 입단속을 잘하라고 말한다.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뭔가 비밀을 간직한 이 마을엔 해결하지 못한 골칫거리가 하나 있다. 바로 쥐떼 들이다. 우룡은 자신이 쥐떼를 몰아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촌장은 우룡에게 돼지 한마리 값을 약속한다. 우룡은 쥐떼를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촌장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봤다. 보는 내내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이야기도, 촬영도, 배우들의 연기도, 컴퓨터 그래픽도. 이전에 이토록 새로운 환타지 호러 영화를 본 적이 있던가 생각해봤다. 떠오르지 않았다. 영화가 끝났을 때는 가슴이 벅차 올랐다. 이 영화는 김광태 감독의 데뷔작이다. 데뷔작 중에서 손에 꼽을 만한 완성도 였다. (이정도로 나를 열광시킨 데뷔작이 있던가.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정도가 떠오른다) 

물론 환호는 이 영화에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 수그러들었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그것이다. 김광태 감독(각본도 직접 썼다)은 '피리부는 사나이'의 이야기를 가져와 1950년대 한국에서 일어난 이야기로 절묘하게 재해석했다. 영화 '고지전'(2011)을 떠올리게 하는 전쟁통의 집단적 죄의식들 (최근 읽은 '베트남전에서 벌어진 한국군들의 양민학살에 관한 글'도 떠올랐다), 영화 '이끼'(2010)를 떠올리게 하는 비밀을 간직한 마을 사람들과 이방인에 폐쇄적인 시선들, 그리고 '웰컴투 동막골'(2005)을  옮겨온 듯한 시공간적 배경과 순박한 정서들. 문둥병 환자들과 무당의 이야기는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문둥병 환자들과 병원장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독창성을 잃은 것은 아니다. 각각의 텍스트들에서 장점만을 취합해와 한편의 호러 영화로 재탄생시킨 느낌이랄까. 

물론 이로 인해 다소 과잉으로 느껴지는 장면들이 없지는 않다. 감독의 욕심이 느껴지는 부분들 또한 많다. 이를테면 벽장 속에 숨겨 있던 촌장의 일본 장교 제복이 드러나는 장면. 촌장이 매국노이건 아니건 그 사실은 이 영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짧은 장면으로 인해 감독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이 영화를 해석하는 즐거움의 폭은 급격히 좁아진다. 김광태 감독은 단순히 한 편의 잘 만든 호러 그 이상의 작품으로 이 영화가 기억되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런 시도들이 100% 성공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근래 가장 패기 넘치는 데뷔작이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류승룡, 이성민, 천우희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최근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배우 3명이 아닌가. 이 3명이 동시에 선택한 시나리오라는 것만 봐도 믿고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이준은 가수보다 배우가 훨씬 잘 어울린다. 한예종에서 무용을 했다는 몸 자체가 연기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무엇보다 '손님'의 미덕은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다는 것이다. 단지 한 폭의 그림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음산한 이야기와 함께 어루러진 많은 명장면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영화의 포스터로 쓰인 '피리부는 우룡과 뒤따르는 아이들의 모습들' 또한 그 중에 하나다. 영화를 보면서 사실 이 장면들은 사족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원작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수긍이 갔다. 무당이 고통받으며 저주를 퍼붓는 장면, 청주댁(천우희)이 신내림을 받고 피를 흘리며 걸어들어오는 장면에서도 소름이 돋았다. 이들 뿐 아니라 많은 등장인물들 저마다의 사연 있고 그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하는 장면이 많았다. 한마디로 풍성한 이미지들의 영화다.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독일의 동화다. 동화의 결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 알려지지 않은 잔혹한 결말들. 어른들은 왜 우리에게 해피엔딩만을 알려줬을까. 문학 작품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들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 대다수의 작품은 영화 그 자체로 남는다. 그런데 '손님'은 여전히 영화가 아니라 한 편의 잔혹 동화를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을 상상하게 한다. 우룡과 그 마을 아이들에 대한 또다른 설화들이 바람을 타고 누군가 내 귓가에 전해줄 것만 같다.

누군가 내게 한국의 공포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나는 윤종찬 감독의 '소름'과 함께 이 영화를 추천할 것이다. 


 

덧글

  • 솔다 2015/07/19 16:06 # 답글

    민담을 기초로 했어도 한국식으로 잘 풀었던 영화같아요! 해방전후, 6.25 사이,종전 후 세대가 골방에 갖히면 갈등 끝에 자멸하는 과정도. 제 때 털어내지 못한 역사의 치부때문에 고발하는 사회, 남에게 일단 떠넘기고 보는 무서운 사회의 기초가 닦인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봤어요. 우룡이 복수 직전 시뻘건 하늘이나 멈춘 바람개비 장면, 영남이 발이 조금 보이고 우룡이 벼랑에 걸터 앉아 산을 내려다보는 장면 등등 미장센(?) 참 좋았어요. 해님달님 떠오르는 그네씬도! 단지 촌장이 기절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든가 (와 하루 지났는데 벌써 까먹..) 하는 건 좀..
  • may be 2015/07/19 20:23 #

    네 동감이에요. 이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환기시키죠. 진짜 공포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더 잔인한 것인지를 영화는 끊임없이 말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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