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719 日 : 영화, 화소도 火燒島, Island Of Fire, 1990 책과 영화의 숲


주연평 감독, 양가휘, 홍금보, 성룡, 유덕화 주연, 왕우 출연

"네 장례식 사진이야. 네 유골은 16번 공동묘지에 묻혔어. 네 사망증명서다. 널 살려둔 건 널 영입하기 위해서야. 넌 이제 청풍부대의 24호 대원이다. 널 한참 관찰했다. 인내심과 정의감이 넘치는데 이용할 줄 모르더군. 많인 죄인들이 악행을 저지르는데, 인권을 방패삼아 법망을 피해가고 있지. 청풍부대는 그런 자들을 제거하는 부대다. 폭력에는 폭력으로. 법망을 피해가게 둘 수 없어. 국가에서 사회악을 제거하기 위해 널 청풍부대로 영입한다. 임무를 완수하면 새로운 신분증과 여권을 줄거야. 원하는 곳에서 새출발을 할 수 있어. 선택의 여지는 없어. 넌 이미 죽었으니까. 유일한 기회는 임무를 완수하는 거야."   


아위(양가휘)는 경찰이다. 그는 미국에서 경찰 수업을 받던중 홍콩에 특수요원으로 들어온다. 그를 부른 것은 역시 경찰 간부인 장인이었다. 장인은 어떤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는데 홍콩에서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요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장인은 아위가 돌아온날 살해당하고 만다. 암살범을 수사하던 아위는 범인이 이미 사형 집행을 당한 인물임을 알게 된다.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아위는 직접 범죄자가 되어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간다. 감옥에는 기존 복역수인 존(홍금보)이 있다. 그리고 사고로 살인을 하게 된 아룡(성룡)이 들어오고, 아룡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강주(유덕화)도 들어온다.   

영화 '화소도'는 교도소를 주 무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상당부분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야기는 옴니버스 구조로 각각 등장인물 들의 사연이 순차적으로 배치되며 그들은 모두 교도소에서 만나게 된다. 영화 포스터는 성룡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주인공은 양가휘다. 주요 등장인물 중 홍금보 정도를 제하면 성룡과 유덕화는 조연에 가깝다. 그럼에도 '화소도'를 성룡 영화로 봤을 때 특이점이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성룡이 전혀 웃기지 않는 영화란 점이고, 또 하나는 성룡이 죽는 sad ending 영화라는 점이다. 성룡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7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의 영화중에 성룡이 정극 연기를 한 영화를 거의 못본 것 같다. - 2000년 이후에는 '뉴폴리스스토리'(2004), 신주쿠살인사건(2008) 등을 통해 제법 진지한 캐릭터 연기를 선보였다. - 또한 성룡의 영화를 아무리 떠올려 봐도 그가 죽는 장면은 '화소도'를 통해 처음 본다. 

성룡의 변신이라면 변신이랄수도 있는 이 영화는 이렇듯 배우를 보는 재미가 큰 영화다. 특히 영화 중반에는 홍콩 영화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바로 왕우다. 왕우는 과거 쇼브라더스의 최고 인기 배우이자 이소룡 이전에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졌던 홍콩 배우다. 그는 '화소도'에서 수감자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로 등장한다. 왕우는 '화소도'의 제작자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추측컨데 이 영화의 놀라운 캐스팅의 비밀은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 전성기 시절의 홍금보, 성룡, 유덕화가 비교적 작은 역할 임에도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은 왕우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은 아닐런지. 

만듦새는 당대의 다른 홍콩영화들에 비해 특별히 더 좋지도 더 나쁘지도 않다. 사건은 평이하며 캐릭터는 전형적인 편이지만 이 영화는 많은 이야기들을 다루고자 한다. 교도소 내에도 많은 인간 군상이 있기 마련이고 그들 저마다의 사연또한 다양할 테니까. 그렇게 주요 등장인물 들의 사연을 펼쳐놓다 보니 정작 아위가 교도소에 들어온 목적을 감독이 잊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초중반 이후에는 마치 양가휘가 주연한 또다른 영화 '감옥풍운'(1987)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갑자기 청풍부대가 등장하는 후반부의 국면전환은 좀 생뚱맞다. 

'화소도'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네명의 주인공이 청풍부대원이 되어 암살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이다. 공항에서 여객기에 걸터 앉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타겟을 암살하는 임무다. 비교적 스케일이 크다. 셀수 없이 많은 군인 엑스트라가 등장한다. 그들을 상대로 성룡, 홍금보, 유덕화, 양가휘가 나란히 서서 총을 쓰는 장면은 그 자체로 카타르시스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이 전설적인 네명의 배우가 멋진 킬러가 되어 하나의 프레임에 담긴 기막힌 순간이라니! 다만 스케일에 비해 공항 활주로는 지형 지물이 별로 없다보니 액션이 단조롭다. 아마도 공항이라는 장소가 영화 촬영을 하기엔 많은 제약이 따랐을 것이다. 특히 수많은 출연진들을 컨트롤하며 섬세하게 촬영하기엔 시간적 제약이 있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많은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소도'는 90년대 홍콩 영화의 힘을 보여준다. 사실 범죄를 저지르기만 하면 모두 화소도에 있는 교도소에서 만난다는 설정 부터가 말이 안되지 않나. (홍콩에는 교도소가 거기 하나 뿐이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소도'는 이야기를 밀어 부친다. 그런데 그게 또 크게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홍금보가 있던 자리에 양가휘가 들어가고, 거기에 성룡이 들어오고, 게다가 곧이어 유덕화가 들어오려 하는 것이다. 그게 말이 안되는줄 알면서도 그 순간을 기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홍콩 영화는 80,90년대에 참으로 많은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우리가 2002년 월드컵 멤버들을 추억하고 그들을 끊임없이 소환하는 것처럼, 지금의 홍콩 영화 또한 그들을 통해 성장하고, 비록 조금 쇠락했을 지라도 그들이 가진 힘 덕분에 그 명백을 아직까지 유지시켜 오는 것은 아닌지. '화소도'는 바로 그 힘을 보여주는 영화다.

- 그렇더라도 등 뒤에서 총을 쐈는데 가슴팍에서 불꽃이 튀는 장면들은 불만이다.  
- '화소도'에는 또 한가지의 미덕이 있다. 바로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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